
Nächstenliebe
독일어 성경에 이렇게 쓰여있는 부분이 있다.
„Du sollst deinen Nächsten lieben wie dich selbst.“ (nach 3. Mose 19,18).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한 구절이다.
나는 요즘 “Nächstenliebe” 라는 주제를 가지고 공부 중 이다. 디자인 대학을 다니는 내가 왜 이 주제를 가지고 공부 중인지 사람들은 가끔 의아해 한다. 다들 내가 사진을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난 사진을 공부하고 있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나의 공부는 아직 정체불명이다. 요즘은 그 정체불명의 공부를 위해 여기저기 찾아 다니며 사진도 찍어보고 길거리나 학교에서 만나는 독일사람들에게 “Nächstenliebe“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인터뷰하고 다닌다. 이게 요즘 나의 공부이다.
몇 달 전부터 나는 파리에서 공부중인 친한 후배의 어머니가 암으로 고생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수요예배의 기도문을 두드려왔다. 그분이 엊그제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 그런데, 오늘 후배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눈물로 날을 지새고 있을 텐데 나는 여전히 잠깐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코미디 프로를 다운 받고 있고 곧 깔깔거리고 웃고 있다. 순간 스스로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게 처음이 아니니 더 심각하다.
지금껏 그래왔지만 예수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Nächstenliebe“를 매일 행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참 어렵다. 항상 그렇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는 이 순간들을 마음으로 행하지 못하는 나를 다시 돌아 볼 때 참 한심했다. 그리고 그것에 질문을 던졌다. 과연 나는 “Nächstenliebe“를 진정으로 실천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어찌 생각해 보면 간단한 것 같지만 나에겐 정말 어려운 숙제이다.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자면 나는 예수가 말했던 “Nächstenliebe“를 진정으로 실천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나에겐 불가능하다. 변명 같지만 그건 내 생각엔 하나님 만이 가능하실 것 같다. 아쉽게도 나는 내 밥그릇을 발로 차면서까지 “Nächstenliebe“를 행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 삶 속에 한가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하루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가 걸어온 그 길과 앞으로 하나님이 주실 그 길에 나 자신 스스로의 만족 할만한 “Nächstenliebe“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기준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매일 연습하는 것이다.
„Ich soll mich in Nähstenliebe üben.“
김 준